뉴-노멀의 정치 (Tae-Kyoung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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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 팬덤'과 분열하는 리버럴의 진정성 내가 쓴 글 - 국내

원래는 140매 분량의 평론으로 문예지에 실리기로 했다가 여차저차해서 문예지에서 빼고 30매로 압축한 글. 웹진 인-무브에서도 볼 수 있다.


‘이니 팬덤’과 분열하는 리버럴의 진정성

고태경 문화평론/정치철학 연구자

대선이 막 끝나고, 한 문재인 지지자는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공격들에 일일이 직접 대응하고 맞서고 해명하고 다투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는 다르다.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기 전에 지지자들이 먼저 나서서 두터운 방어막을 형성한다. 때로는 방어를 넘어서 선제공격한 자들에게 통렬한 역습을 가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 직접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어진다.”(주1)

문재인 팬덤 내에서 강력한 호응을 얻은 이 글은 오늘날 ‘이니 팬덤’의 성격을 그 어떤 글보다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당선 후 문재인의 행보를 요약해 주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위로’와 ‘공감’이었다. 당선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리본을 달고, 5.18 유가족을 안아주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세월호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대한 문재인은 사드 배치 후 발표한 담화문에서도 반대세력에게 “위로”를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노타이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산책하는 탈권위적 대통령의 이미지 컨셉은 아픈 자들을 보듬어 안는 ‘착한’ 대통령의 이미지와 완벽한 시너지를 일으킨 듯하다.

지지율의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위로와 공감의 이미지 반대편에서 움트는 불안을 어쩔 수가 없다. 성주 주민들과 사드 반대진영이 대통령의 ‘위로’ 이전에 발견한 것은 경찰들의 거친 진압이었다. 러시아 순방 중인 대통령의 “손을 더립”히지 않기 위해 정부 관료들은 발빠르게 움직였고, 팬덤은 성주 주민들을 직접 질타하고 나섰다. 사드배치가 북핵방어용이 아니라는 것은 정부관료들도, 팬덤들도 모두 숙지하는 사실이다. 마키아벨리적인 정치공학의 세계에서 아이돌처럼 방부처리된 이 ‘이니’의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진정성이라는 모호한 이미지와 그 분열

한국에서 정치팬덤의 태생은 2000년대 초의 노무현 팬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정치 판도를 변화시킬 거대한 힘을 보였던 팬덤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규모나 활동 목적 등 모든 면에서 변화와 진화를 거듭했다. 잠시 2003년으로 돌아가 보자.

주지하다시피, 2003년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의 지도력에 치명타를 날렸다. 2002년 대선에서 열광적인 지지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이끈 노사모는 2003년 이라크파병 반대 성명을 발표해 대통령 노무현과 대치한다. 지지층에서 혼란이 일었으나, 이 혼란을 바로잡아준 것은 바로 ‘인간 노무현’의 진정성에 대한 믿음이었다. “대통령이 지금 이런 부도덕한 전쟁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있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주2) 1인 시위로 이라크 파병 반대를 선언한 노무현 지지자 고 신해철의 이 발언은 당대 노무현 팬덤의 내적 분열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노무현 팬덤의 노무현 지지방식을 잘 보여준 이러한 분열은 노무현의 별칭에서도 잘 드러난다. ‘바보 노무현’은 어떤 존재인가. 그에 대한 평가 중 하나는 그가 성급하게 대중 앞에 나타나 정치적 선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지지자들 뒤로 물러서서 이미지 정치를 하는 문재인과 달리 노무현은 (순진한) 포퓰리스트적 선동가의 기질을 갖고 있었다. ‘바보 노무현’(혹은 인간 노무현)은 정치공학의 세계에 발들인 ‘대통령 노무현’과의 대비 속에서 그 진정성의 의미작용을 일으켰다. “직접 손을 더립”히며 팬덤을 선동한 이 정치인에게서 이라크 파병 철회의 진정성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에 대한 팬덤의 믿음이 이라크 파병에서 한미FTA를 거쳐 대연정 제안까지의 5년을 관통하며 급격히 냉각되었다는 점이다. 

한편, 안철수와 문재인을 경유하며 형성된 오늘날 정치 팬덤의 스탠스는 노무현 팬덤의 시대정신과는 매우 이질적이다. 부산이라는 우파의 텃밭에 등장한 비주류 고졸 변호사와 엘리트 출신의 안철수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2011년 안철수가 정치 무대에 등장하며 퍼트린 대표적인 이미지가 이른바 ‘착한 위너’의 이미지였다. 2012년 10월 『안철수의 착한 성공』이라는 책이 출간되고, 다시 한 달 후 『착한 성공』이라는 책이 출간된다. 이어 출판시장에서 ‘착한’과 ‘성공’을 동시적인 키워드로 사용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착한’이란 무엇일까. 오늘날 청년 리버럴들은 이 ‘착한’의 이미지를 탐닉한다. 배우 한지민은 ‘착한 외모’에 기부 및 봉사활동 등의 ‘선행’을 소리소문 없이 행하며 대중들의 찬사를 받는다. 가수 김장훈과 션은 ‘기부천사’로 기억되고, 이효리는 모피코트를 거부하고 자원봉사에 열을 올리며, 자본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난(?) 변방의 섬나라에서 ‘친환경적’ 삶을 추구한다고 알려졌다. 오늘날 대중들에게 이 ‘착한’의 이미지들은 진정성의 새로운 표지처럼 이해된다. “이효리에게서 ‘연예인의 가식’을 본 적이 있나. 그가 ‘상품’이 아닌 이유는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주3) 작곡가 김형석이 최근 이효리에 대해 내린 평가다.

오늘날 ‘착한’이라는 수식어는 좁은 도덕적 의미를 벗어나 삶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내 언어학 연구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착한’의 의미확장이 2000년대 이후 크게 가속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착한 가격, 착한 밥상, 착한 외모, 착한 기업 등 적용영역은 무한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착한 소비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를 전후로 소비자 운동이 대중운동으로 확장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중동불매, 삼성불매, 옥시불매를 넘어 최근에는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 등의 진보언론에 대한 불매가 문재인 팬덤 사이에서 불을 뿜기도 했다. 지자체와 정부의 지원으로 ‘사회적 경제’의 담론이 확산되며 올바른 소비의 덕목이 무엇인가를 묻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때의 ‘착한’과 같은 계열에 놓인 수식어가 2008년 촛불시위 이후 확산된 ‘개념’과 ‘깨어 있음’임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착한 연예인은 이른바 ‘개념 연예인’이며, 교양과 상식을 갖춘 이 연예인들은 대중의 열광적인 찬사를 받는다. 아이유의 이른바 ‘제제(Zeze) 논란’, 설현, 티파니 등의 역사의식 논란은 그 반례로서 기억될 만하다.

‘상식’의 시대가 진정성을 열망하는 법

요컨대, ‘착한’은 ‘교양’과 ‘상식’으로 대체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겨울의 촛불시위는 이른바 ‘상식 대 몰상식’의 대결로 프레임화되었다. 유력 대권주자로 촛불시위에 나섰던 문재인과 이재명은 이구동성으로 촛불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승리’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유행하는 이 ‘상식’의 프레임, 혹은 ‘흙수저’론으로 불거지는 ‘공정성’의 문제틀은 사실상 문재인과 이재명이 아니라 2012년 안철수에게 그 기원을 둔 것이기도 하다.

지난 촛불시위가 던진 상식 담론의 반대편에 놓인 것이 ‘무당’ 최순실의 ‘국정농단’이었다. 촛불시민의 ‘교양’과 ‘착한’의 이미지가 시민의 규범적 자격을 묻는 것이듯, 촛불시위는 근본적으로 공론장의 시민적 자격을 갖춘 자들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우선, 무당에 대한 퇴출이 시작되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된 지난해 10월 ‘테블릿 PC’의 등장과 함께 온라인을 가장 빈도 높게 달군 표현은 부패나 비리, 권력 혹은 자본 등이 아니라 최순실의 비정상성을 함축하는 ‘무당’, ‘사이비’, ‘강남 아줌마’ 등의 담론들이었다.(주4) 

두 번째의 퇴출은 언론을 향해 진행되었다. 대선을 전후로 온라인에 나타난 문재인 팬덤의 진보언론 절독 움직임은 이미 1년 전 넥슨 여성 성우 해고사태를 통해 전개된 <시사인> 절독 움직임과 궤를 같이한다. 절독운동에 참여한 리버럴들은 반복해서 상식의 승리를 말한다. 이들에 따르면, 메갈리아의 페미니즘에 대항하는 ‘진짜 페미니즘’이 존재한다. 촛불 이후의 시대는 아무 실행력도 없는 ‘입진보’가 아니라, 상식의 규율로 무장한 ‘깨어 있는 시민’의 시대가 될 것이다. 상식(common sense)이란 말 그대로 다수에게 공통적인 시대인식을 말한다. 과거였다면,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불렀을 이 상식의 선언은 청년 리버럴 자신들의 사고와 감성이 시대의 지배적 규범과 일치한다는 자신감의 선언이기도 하다.

반대로, 과거의 사회운동들은 시대의 규범과 불화하는 형태를 취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구호는 노동자와 빈민, 장애인 모두에게 모두 귀속되는 구호였고, 여성과 성소수자들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먼저 시대의 규범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해야 했다. 지배자의 언어가 아니라 억압받는 자의 언어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회운동의 기본 과제 중 하나였다.

진정성(authentic)이란 무엇인가. 그리스어 어원에서 그것은 자기(autos)로 존재(hentes)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 사회운동들은 이 자기됨의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고자 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두발 자유화’를 내걸었을 때 이들은 자기 신체에 대한 직접적 자기통제권을 열망했다. 70년대 ‘여공’들에게 자기됨의 열망은 글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쓰는’ 행위와 결부되어 있었다. 수많은 노동자 수기들이 쓰여졌고, 70~80년대 노동자운동의 주요 거점 중 하나는 이 글쓰기를 통해 매개된 야학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진정성이라는 것은 규범과 불화하며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그냥 본래적 자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 하거나 문자라는 새로운 세계와의 힘겨운 조우 끝에 쓰여져야 했던 무엇이다.

다시 2017년으로 들어서며 문학의 붐이 일기 시작한다. 전체 베스트셀러 중 압도적 다수가 문학작품이 되었고, 시인들에게 팬덤이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주5) 청년들은 더 이상 자기계발서를 탐닉하지 않으며, 도서관은 시인들의 낭독회를 연출하기에 바쁘다. 모든 사회운동의 활황기, 혹은 역사적 혁명운동의 부흥기에는 문학의 번성이 있었다. 19~20세기 유럽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1970~80년대 한국 근대문학의 번성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와 해방은 ‘쓰여져야’ 한다는 것, 자기 본연의 존재로 돌아가는 것은 수많은 이들의 집단적 상상력과 투쟁을 통해 열정적으로 매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2017년 문학의 새로운 번성이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과 얼마나 연결될지 나는 알 수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것은 그저 자아연출, 혹은 ‘착한’ 이미지 연출의 도구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07년 기업가 정치인의 등장에 환호하던 감성은 오늘날 많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기업가’ 안철수를 무너뜨린 것은 놀랍게도 ‘MB아바타’의 이미지였다. 인문․문학 출판시장의 붐을 주도하는 것은 강남역 여성살해에 저항해 일어선 페미니즘의 저항 담론이다. 어떤 변화의 도정이 전개되고 있고, 모든 것은 복합적인 이미지와 관념들의 갈등 속에 중층결정되고 있다. 4년 전 대자보를 들고 안부를 물으며 철도파업을 지지하던 이들은 이 ‘헬조선’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역사적으로 성공한 거의 모든 혁명은 두 번 이상 반복되었다. 한국에서 촛불이 다른 맥락과 움직임 속에서 다시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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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선진, 「문재인 지지자의 운명」, 2017년 5월 19일자 페이스북 게시물(https://m.facebook.com/kimsunjin1977/posts/10155171969801893).

2) 「"칼 안 쥐었다고 공범 아닌가?" - 가수 신해철, 청와대 앞서 반전/파병 반대 1인 시위」, 『프레시안』, 2003. 3. 21.

3) 「‘효리 신드롬’..개량한복과 탱크톱, 눈주름과 마스카라」, 『스포츠조선』, 2017. 7. 10.

4) 김학준, 「빅데이터를 통해 바라본 촛불 민의」, 『황해문화』, 2017 여름, 66쪽.

5) 「문학서적 베스트셀러 장악 … 10위권 중 9권」, 『문학뉴스』, 2017. 8. 19; 「SNS 타고 호시절(好詩節) … 수만부 찍는 ‘스타 시인’ 잇따라」, 『한국경제』, 2017. 7. 22.

얀-베르너 뮐러 _ 독일 신우익의 이면에서 번역 - 유럽정치

[옮긴이: 지난해 4월에 발표된 글이다. 신생 극우정당 ‘독일의 대안’과 페기다 운동의 성장 맥락에 주목한 글로, 이 글의 발표 후 일부 주 선거들에서 선전한 ‘독일의 대안’은 당지도부와 일부 반유대주의 극우파 간의 당내 갈등이 지속되는 한편, 오는 9월 24일에 열릴 총선에서는 원내진출이 유력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원문의 출처는 Jan-Werner Müller, “Behind the New German Right”,The New York Review of Books, April 4, 2016, 링크. 대괄호 안의 삽입구는 옮긴이가 추가한 것이며 필요에 따라 옮긴이 주를 달았다. 번역문은 웹진 <인-무브>(http://en-movement.net/66)에 실렸던 것을 제목과 인명 표기에 세부 조정만 한 것.]


독일 신우익의 이면에서

얀-베르너 뮐러(Jan-Werner Müller)
고태경 옮김(refur1343@gmail.com)


전후사에서 독일은 우익 포퓰리즘의 유혹에 저항하는 데 성공해 왔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이들을 총살할 필요가 있다고, 이슬람사원을 금지해아 한다고 주장한 ‘독일의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이하 ‘대안당’]은 독일 내 세 개 주의 선거에서 두 자리수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 중 하나인 작센안할트 주에서 대안당은 거의 1/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일부 관찰자들에게 있어서 대안당은 독일의 진전된 ‘정상화’의 증거일 뿐이다. [이들에 따르면]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주요국들은 유럽통합에 반대하고, 인민을 대표하는 데 실패한 기성 정치질서를 비난하는 정당들을 오래전부터 보유하고 있었다. 독일이라고 왜 예외이겠는가?

이러한 자족감은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대안당은 급진적 거리운동인 ‘서구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 즉 페기다(Pegida)로부터 자라났고, 동시에 그 운동을 조장해 왔다. 이러한 운동은 유럽의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해 보이는 것은, 메르켈 총리의 100만 여 난민에 대한 환대가 독일 ‘문화의 점진적 박멸’로 귀결되리라는 대안당의 경고가 수많은 유명 지식인들에 의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사실상, 대안당의 한 이데올로그가 ‘아방가르드적 보수주의’라고 명명한 이것의 개념적 근거는 여러 주류 독일 작가들과 철학자들의 최근 작업에서 발견될 수 있다. 나치 시대의 종언 이후 어떤 우익 정당도 이토록 폭넓은 문화적 지지를 누린 적이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대안당은 2013년에 존경받는, 전혀 카리스마적이지 않은 경제학 교수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독일의 대안이라는 그 이름은 앙겔라 메르켈의 주장, 즉 유로위기에 대한 메르켈 자신의 정책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에 대항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이 교수진들은 유로화에 반대했는데, 이는 그들의 눈에 유로화가 독일 납세자에게 과다한 재정적 채무를 부과하고 유럽 국가들 간에는 불화를 야기한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럽 내 다른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의 유럽연합 자체의 해산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독일 주류 정당들은 그들에게 ‘반(反)유럽적’이라는 오명을 씌웠고, 이는 수많은 유권자들에게 독일 정치기득권층이 특정 정책의 선택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한다는 인상을 부여했다. 여타의 신규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대안당은 모든 정치적 모험가들을 매혹했다. 그러나 당은 또한 메르켈의 정책들이 기독교민주연합을 과도하게 좌익화한다고 생각한 보수주의자들에게 서식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 메르켈은 핵에너지와 군대징집을 끝내고, 동성결혼을 승인하며, 최저임금을 올리고자 한다. 이러한 메르켈의 결정들 다수에 반대하는 주류 보수주의적 관점이 존재하기에, 대안당은 비민주적이라거나 나치의 과거를 연상케 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 이제 기독교민주연합의 우파적 공간을 점유할 수 있게 되었다.

대안당은 2013년에 독일의회에 들어서는 데 아슬하게 실패했지만, 2014년 유럽의회선거를 통해 7명의 의원을 브뤼셀로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국 보수파들에 의해 주도되는 유럽회의주의 정당들과의 동맹에 결합한다. 외적인 성공과 함께 내적인 갈등이 시작되었다. 청년 우익들은 정통 보수파의 기독교민주연합보다는 내셔널리즘적 극우 성향에 더 근접한 ‘애국주의 강령’ 등의 발의를 통해 대안당 교수진들에 도전했다. 2015년 여름, 대안당 설립자들 대다수가 당을 떠났다. 그 중 어떤 이는 ‘괴물’[청년 우익들]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한 회한을 표했다. 대안당은 여타의 수많은 저항정당의 길을 따라갈 것으로 보였다. 당의 내분과 전문성의 결여, 그리고 ­ 일시적인 성공을 넘어서기 위해 참여해야 할 ­ 일상의 의회정치에 필요한 인재 육성의 실패로 좌절할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앙겔라 메르켈에 의해 이 당이 보호되었다. 혹은 훨씬 더 급진적인 성향을 갖는 이 당의 새로운 리더들은 지난 여름 발효된 메르켈의 논쟁적인 난민정책 이후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메르켈의 결정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몇 개월 후 그녀의 지지층은 급격하게 쇠락했다. 반대로 대안당의 지지층은 폭증했다. 많은 이들이 독일 국가가 이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까 두려워했고, 이 위기에 대한 진정한 범유럽적 협상에 실패한 메르켈을 비난했다. 알렉산더 가울란트(Alexander Gauland)는 기독교민주연합의 이전 고위급 정치인이자 현재 가장 인정받는 대안당의 리더 중 한 명으로서 ­ 그는 전통적인 영국 보수당의 외양을 따라하며 트위드 자켓을 입고 에드문드 버크를 자주 인용했다 ­ 난민 위기를 대안당에게 부여된 ‘선물’이라고 명명했다.

다른 이들은 더 나아갔다. 니더작센 주의 백작부인(countess) 베아트릭스 폰 스트로흐의 말을 참고해 보자. 그녀는 유럽의회의 대안당 의원 중 한 명으로, 유럽의회에서 영국독립당과 스웨덴 극우파 민주당이 포함된 집단에 결합했다. 자유시장의 이념과 기독교 근본주의 모두의 옹호자로서 그녀는 국경경비대가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난민들에게 여성과 아동들을 포함해 모두 화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당한 비판이 쏟아진 후 그녀는 아이들은 면제되어야 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여성은 예외가 아니었다.
'독일의 대안'(AfD)의 집회 장면으로, 피켓 구호로 "메르켈은 물러나라!", "우리가 인민이다!" 등이 보인다. - 옮긴이

이러한 발언은 새로운 유입인구들이 독일 문화에 심대한 위협을 줄 거라고 유권자들 사이에서 널리 확신된 공포 ­ 라고 대안당이 간주하는 것 ­ 를 활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대안당은 4월 말의 한 컨퍼런스 이후 완성된 정치강령을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당이 독일의 이슬람화라고 간주한 것을 방어하는 것에 커다란 강조점이 주어질 것이라는 암시가 이미 존재한다. 강령의 초안은 “우리는 독일인이며 독일인으로 남길 원한다”와 같은 문구를 포함한다. 그리고 이 진부한 문구의 진정한 의미는 미너렛(minaret, 이슬람사원의 첨탑)의 건축을 금지하자는 요구를 통해 구체화된다. 대안당과, 그보다 더 거친 반(反)이슬람적 페기다 운동의 방향이 가장 명료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페기다는 2014년 가을 우익 활동가들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이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드레스덴을 비롯한 일부 도시들을 경유하며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이른바 ‘저녁 산책’에 참여토록 유도했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또한 러시아와의 관계향상을 주장했던바(벽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푸틴이여 우리를 도와주시오!”), 그것은 가울란트와 같은 대안당 정치가들에 의해 강력한 반향을 얻게 된다. 시위자들은 1989년 동유럽 시민들이 국가사회주의체제에 맞서 외친 유명한 슬로건 “우리가 인민이다”를 전유했다. 페기다는 확산된 공포를 기반으로 자라났을 뿐 아니라(드레스덴에는 거의 어떤 무슬림도 없다), 민주주의 체계 그 자체를 문제시하기도 했다. 의회에 선출된 인민의 대표들(Volksvertreter)은 인민의 배신자(Volksverräter)로 규탄당했다. 페기다 구성원들은 메르켈의 국경개방 정책을 독일 인민의 안전을 수호하겠다는 취임선서를 위반한 것이라고 매도했다.

이 운동의 지지자들은 난민센터에 대한 접근 차단 등을 통한 ‘저항’을, 혹은 최소한 ‘시민불복종’을 요구했다. 시위자들은 때때로 슈타우펜베르크(Claus von Stauffenberg) 등의 반(反)히틀러 저항자들이 나치 이후의 독일을 상징하는 것으로 고안한 ‘비르머 깃발’을 치켜들었다.(주1) 사실상 독일 내 많은 극우집단들은 (이 깃발의 고안자인 조제프 비르머가 나치에 의해 처형된 가톨릭 민주주의자였으며, 그의 아들에 따를 때 비르머 가족들이 이 상징물의 사용 문제로 페기다 시위자에게 소송을 걸었음에도) 자신들이 현행 국가를 불법국가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이 상징물을 든다는 것을 시인했다. 페기다 사건은 네덜란드의 저명한 우익 반이슬람 정치가 기에르트 빌더스를 비롯한 독일 외부의 우익 지도자들의 주목을 끌었다(빌더스는 헤이그의 네덜란드 의회를 ‘가짜 의회’로 규정한다).

이 지점에서 독일 지식인들이 서사 속으로 들어온다. 저널리스트들과 학계는 페기다 운동이 왜 출현했는지, 그리고 왜 독일인들 다수를 사로잡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페기다 운동의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운동들은 여전히 주변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 현상이 ‘분노’와 ‘원한’에 의해 추동된다고 보는 이들은 기껏해야 묘사적인 해석에 머물 뿐이다. 오히려 주목할 만한 것은 ‘격노’(rage)가 하나의 정치적 태도로써 대안당의 지도적 지식인인 마르크 용엔(Marc Jongen)의 철학적 찬양을 받았다는 점이다. 저명한 철학자 슬로터다이크의 조교이기도 했던 그는 독일의 ‘문화적 자멸’의 위험을 경고할 뿐 아니라, 냉전과 미국의 안보 우산에 의해 독일인들이 군사적․치안적․전사적(warrior) 덕목의 중요성을 망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에로스와 로고스, 즉 사랑과 이성에 대립되는 의미에서 ‘thymos’라고 부른 것을 망각했다고 주장했다(thymos는 기개, 자신감, 정당한 분노, 자기 자신의 것에 대한 인식, 혹은 격노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주2) 용엔은 최근의 독일에 thymos가 온전히 공급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일본인들만이 유일하게 thymos의 더 큰 부족을 경험했던바, 그것은 그들 또한 전후의 평화주의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용엔에 따르면, 일본이 그러한 결핍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거주자들이 이민자들의 ‘위력적인 본능’과 직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노한 시위자들은 독일사회에 thymos를 점화함으로써 더럽게 좋은 일을 행하는 셈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대안당 부위원장인 용엔은 사실상 지난 봄 이전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슬로터다이크는 그렇지 않다. 독일의 가장 저명한 (그리고 가장 다작의) 철학자 중 한 명인 슬로터다이크의 저술은 미국에서 역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유전공학 등의 논쟁적 주제를 정례적으로 다루며, 유머와 재치를 결여한다고 간주된 좌파 지식인들을 자극하는 데 즐거움을 느껴왔다. 그의 책은 너무나 잘 팔리며, 명료한 논지보다는 암시적으로 최근사 혹은 서구사 전체에 대한 철학적, ­ 그리고 종종 ­ 시적 재기술(再記述)을 제공한다. 그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준 니체의 『도덕의 계보』에서처럼, 이러한 재기술은 독자들을 현재에 대한 관습적 해석으로부터 이탈시킨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그의 저술은 철학자에 대한 니체의 이미지에는 거의 부응하지 않는다. 니체의 철학자 이미지는 ‘문화의 의사’[Arzt der Cultur]의 이미지로서 환자에게 궁극적으로는 불쾌하거나 철저히 충격적인 진단을 내리는 존재다. 슬로터다이크는 종종 독일 주류로 돌아가 그것이 이미 사고하고 있는 것, 그것이 단순히 반향하고 있는 것을, 순진한 은유와 유비, 유치한 시대착오성과 그의 틀에 박힌 문체 특유의 신조어군들을 통해 보다 심오하게 읽어낼 뿐이다.

슬로터다이크는 용엔의 자칭 ‘아방가르드적 보수주의’와는 거리를 둔다. 그러나 용엔이 사용하는 ‘심리-정치학적’ 관점은 슬로터다이크의 철학적 표제 중 하나다. 2006년 『격노와 시간』에서 니체로부터 실마리를 찾아간 슬로터다이크는, 서구 소비 자본주의에서 에로스의 지배로 인해 thymos가 완전히 망각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로 시민들의 내면은 질투와 원한이 지배했다는 것이다. 그는 평화로운 자유민주주의가 일반적으로 ‘격정적 활력’(thymotic energies)의 고유장소를 찾지 못한다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서의 주장에 공명한다. 그리고 그는 노골적으로 이슬람에 적대하면서 서구가 thymos의 역할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유럽연합을 ‘탈-격정적’(post-thymotic)이라 비판한 용엔과 마찬가지로, 슬로터다이크는 유럽이 세계무대에 더욱 강력히 자기주장을 할 것을 갈망하며, 난민위기가 유럽대륙을 약화시킬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난민위기를 미국의 기쁨이라고도 말한다(2016년 초에 공표된 한 인터뷰에서 슬로터다이크가 한 말에 따르면, “이것이 오바마가 메르켈을 칭찬한 이유다”).

슬로터다이크는 또한 20세기의 우익 법학자 칼 슈미트가 발전시킨 ‘예외상태’의 개념을 끌어들였다. 슈미트가 말하듯, 위기상황에서 정치체의 보호를 위해 주권자는 예외상태의 선언을 통해 헌법을 중단시킬 수 있다.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국가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자가 최고권력으로 현현한다고. 오늘날 슬로터다이크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이가 명목상의 주권자인 국가가 아니라 난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시리아인에 대한 메르켈의 무제한 개방정책의 결과로, 독일이 그 자신의 주권을 잃었으며, 이 “포기”는 “밤낮 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규탄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난민들 자체는 비상사태에 직면했으며,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의 출현은 독일에 예외적인 도전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슬로터다이크의 관찰은 기껏해야 일시적으로 매혹적인 아포리즘이 될 뿐이며, 현 상황에 대한 어떠한 진정한 분석과도 대립된다. 메르켈과 그녀의 의회 다수파는 실질적인 결정능력을 갖고 있으며, 유럽의 이 최강대국이 위험한 이방인들의 노리개가 되리라 생각할 아무런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슬로터다이크는 자신에 대한 비판가들을 피상적인 지식인으로 규탄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사상을 “새해 전야의 여성”에게 하듯 포위한다고 말하며, 지난 겨울 쾰른에서 여성들에게 일어난 폭력을 천박하게 암시했다.(주3)

슬로터다이크가 독일인의 “침략당”하는 존재의 이미지를, 궁극적으로는 “절멸”에 직면할 무기력한 희생자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유일한 문화적 저명인사는 아니다. 작가 보토 슈트라우스(Botho Strauβ)는 최근 ‘최후의 독일인’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는데, 그 글에서 그는 자신이 이방인들과 “경제적-인구학적 이유 등으로 섞여서 회춘하는” 존재보다는 오히려 죽어가는 존재일 거라고 선언했다. 그는 “헤르더에서 무질로” 이어지는 국민적 유산은 이미 상실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무슬림들이 전통을 따른다는 것의 함의가 무엇인지를 독일인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무슬림은 자신의 유산에 온전히 복종하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상 동독 시골지역의 은둔자 이미지를 만들어온 그는 독일 민족이 이 나라에서 소수민족이 되는 순간,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하여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레토릭은 독일 정치문화에서의 잠재적인 심층 변화를 암시한다. 이제 나치의 과거와 연계되지 않고도, 혹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치 과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도 노골적인 내셔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독일이 1968년의 경험들을 역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가능해졌다. 그 당시에 반해, 시회민주당과 기독교민주연합의 대연정은 의회 내 좌파의 진정한 대표가 없다는 것을 함의한다. 혹은 그로 인해 학생운동가들은 이제 연방의회 내에서 메르켈의 난민정책에 대항할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기성 지식인들이 점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파가 “의회 밖 저항”에 참여할 필요가 생겼다는 결과를 동반했다. 이것이 정부의 특정 정책에 대항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대안당이 강령 초안에서 노골적으로 밝혔듯, 자기이해관계에 빠진 모든 정당들의 정치계급이 민주주의 체계 전체를 강탈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 대항의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이다. 대안당은 이렇게 말한다. 이 상황은 인민(Volk)이 교정해야 할 “불법적 상황”이라고.  

1960년대 말의 일부 급진파들처럼 신우익 “아방가르드”들은 현재의 순간이 종말론적 위험의 순간일 뿐 아니라 쾌락(exhilaration, 흥분)의 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예컨대 괴츠 쿠비체크(Götz Kubitschek)와 같은 보수파 내셔널리스트 혹은 철저히 반동적인 저술가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유럽 내의 “침략” 혹은 “거대한 인구 대체”에 대해 경고하는 장 라스파일과 르노 카뮈 같은 이들이 존재한다. 쿠비체크는 페기다 시위자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쾌락(주4)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작센안할트 주의 관할지에서 ‘애국주의 강령’ 관련 컨퍼런스를 조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비체크는 대안당의 초창기 온건 국면에서 입당을 시도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으나, [이후] 당의 의장 뵈른 회케(Björn Höcke)를 튀링겐으로 초대했다. 회케는 전공은 중동교사로서, 지난 가을 ‘재생산 전략’에서 있어서 생명긍정형의 팽창적 아프리카 유형과 ‘거점형’(place-holding)의 유럽 유형 간의 차이에 대해 강연을 진행했다. 에드워드 윌슨의 생태학 이론으로부터 이러저러한 어설픈 해석을 끌어들인 후, 그는 그 피상적 과학 증거들을 독일인들의 ‘쇠락’(decadence)을 질타하는 데 사용했다.

이러한 사상은 중대한 저항에 부딪혔다. 일부 지식인들은 슬로터다이크가 난민의 삶의 현실에 대해, 혹은 메르켈이 곡예를 펼치는 복잡한 정치적 필요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채로 민족심리학을 제시하는 탁상공론형 철학자라고 비판했다(이에 대해 슬로터다이크는 자신은 단지 포퓰리즘의 편에 서 있을 뿐이며, 포퓰리즘은 점증적으로 침묵하는 다수의 현실정치라고 말한다). 사회이론가 아르민 나세히는 이 외견상의 아방가르드적 보수주의자들이 국민적 동질성이 높을수록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회학적으로 순진한 관점 외에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음을 빠르게 지적했다. 그리고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나비드 케르마니는 극찬을 받은 ‘발칸의 도정’(Balkanroute)에 대한 보고서(주5)를 통해 독일인들에게 난민의 실질적인 곤경을 상기시켰다. 나세히와 케르마니는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사려깊은 지식인들에 속한다. 이 둘은 또한 부모들이 1950년대에 이란으로부터 독일로 이주한 2세대 이민자다.

대안당은 여전히 정치체계에 정착하는 데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내분이 지속되고 있는바, 특히 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할지 ‘근본적 반대파’로 남을지에 대한 의견불일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안당이 저항의 영웅론을 환기하면서도 동시에 온건한 시민들(Bürger)의 서식처가 될 수 있을지는 명료치 않다. ‘발칸의 도정’에 대한 실질적인 폐쇄와 함께 독일로 유입되는 난민들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메르켈에 대한 압력도 이완되고 있다. 그러나 보수파든 내셔널리스트든 난민 위기 동안의 메르켈의 태도를 쉽게 용서치는 않을 것이다. 독일인의 3/4이 이제 대안당이 2017년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설령 원내진출에 요구되는 문턱을 넘지 못할지라도, 그 당과 당의 지적 지지자들은 1990년의 통일 이후 독일 주류 정치담론에 가장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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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옮긴이 주) 조제프 비르머(Josef Wirmer)는 슈타우펜베르크 등과 더불어 1944년에 히틀러의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반(反)히틀러 우파 계열의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이 암살 시도는 ‘7월 20일의 암살’(Attentat vom 20. Juli)로 명명되며, 비르머가 암살 후 정권장악을 대비해 고안한 깃발은 적색 바탕에 스칸디나비아 십자가가 그려진 형태를 띠고 있다.

2) (옮긴이 주) thymos는 음역하면, ‘시모스’, ‘티모스’ 정도가 될 듯하다. 여기서는 맥락상 원어를 그대로 표기하되, 다른 단어와 섞이며 의미군을 형성할 때에는 일반화해서 ‘격정’으로 번역한다.

3) (옮긴이 주) 2015년 마지막 날 쾰른에서 열린 거리 축제에서 여성들에 대한 집단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다. 당국은 가해자들 다수가 무슬림이라고 규정하며, 독일 내 반무슬림-반난민의 정서를 선동하며 논란이 일었다. 난민 문제가 서구 여성에 대한 테러로 과잉해석된 사례로, 슬로터다이크는 이 사태의 비유를 통해 스스로를 난민문제의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4) (옮긴이 주) 뮐러의 원문은 “pleasure (lust)”라고 되어 있는데, 참고로 쿠비체크가 페기다 시위와 관련해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가능성이, 정치적 서광이 지평선 위로 열리고 있다. 분노하는 것, 정치에 저항하는 것은 쾌락이다!”(Es ist am Horizont eine neue Möglichkeit aufgegangen, eine politische Morgenröte, und es ist eine Lust, zornig zu sein, und der Politik die Zähne zu zeigen!).

5) (옮긴이 주) 2016년 초에 출간된 책 <실재의 침입: 유럽 난민의 도정에서>를 가리키는 듯하다. Navid Kermani, Einbruch der Wirklichkeit: Auf dem Flüchtlingstreck durch Europa, München: C.H.Beck,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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