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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는 유로존 헤게모니 위기의 두번째 시험대다 내가 쓴 글 - 국제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이다(링크).

카탈루냐는 유로존의 벽을 넘어설 수 있는가

고태경 정치학·매체학 연구자

오늘날 카탈루냐의 운동은 분리주의 운동인가, 독립운동인가? 이 운동이 19~20세기 식민지 해방운동과는 궤를 달리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쟁점은 투쟁의 상대가 누구인가 하는 점에 있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투쟁 상대는 스페인 중앙정부다. 지난 10월 1일자 독립 총투표의 직접적 기폭제가 된 것은 2010년 스페인 헌법재판소의 카탈루냐 자치법령에 대한 위헌 판결이었다. 2006년 카탈루냐 주가 포고한 자치법령은 카탈루냐를 행정적 자치단위를 넘어 독자적인 '민족'(nación)으로 규정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자치정부의 자기규정을 스페인 전체의 통합성을 저해하는 위헌적 요소로 간주했다. 스페인 소속의 주이면서도 민족 고유어인 카탈루냐어를 사용하고, 독자적인 민족적 유대감을 발전시켜 온 카탈루냐인들에게 이 위헌판결이 거대한 분노를 촉발시켰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 이후로 카탈루냐 내 독립여론은 20% 내외의 낮은 수준에서 과반을 웃도는 수준으로 큰 반전을 겪게 된다. 같은 해 남유럽 전역에서 폭발한 재정위기는 민족문제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카탈루냐 독립 투쟁의 외연을 대중운동의 형태로 확대했다. 오늘날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운동에서 스페인 중앙정부의 노골적인 탄압은 이 장기적인 위기의 한 단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분리-독립 후의 유로존과의 관계설정에 있다. 중앙정부와의 분리가 자연스럽게 '유로존 탈퇴'의 상황을 연출했을 때, 카탈루냐는 정말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블록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치공동체로 생존할 수 있을까. 카탈루냐 독립투쟁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1978년의 민주화와 함께 시작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와의 대결을 동시에 예비하고 있다. 

스페인 '1978년 체제'의 위기와 카탈루냐의 신흥 좌파 

포데모스의 이론가 마뇰로 모네레오는 현행 스페인 내 정치적 쟁점을 '사회적 문제'와 '민족적 문제'로 양분한 바 있다. 사회적 문제란, 유럽 재정위기를 통해 전면화된 계급문제를 지칭하는 반면, 민족 문제는 카탈루냐와 바스크 등 자치주들의 자율성 확보을 위한 스페인 내 분리-독립 운동들을 지칭한다. 프랑코 독재기인 1970년대 이전까지 카탈루냐의 민족주의 운동은 지역 노동계급에 기반한 좌파 민족주의적 경향을 수반했다. 반면, 독재자 프랑코의 죽음 이후 수반된 가파른 '민주화'의 물결은 '1978년 체제'라 불리는 새로운 헌정 체제를 양산하며 정치적 자유화를 야기했다. 1978년 체제하에서 카탈루냐 민족운동은 엄밀한 의미의 직접적 독립운동의 성격을 띠지는 않았다. 대체로 스페인 중앙정부와의 관계도 개선된 상태였기에, 정치세력들 역시 직접적 독립이 아니라 연방제로의 이행을 통해 자치주로서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2010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과 유럽 재정위기가 겹치며 소극적인 민족운동은 직접적인 주권적 독립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스페인의 '1978년 체제'는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자산 시장의 거대한 거품을 수반했다. 1980년대 이후 부동산-금융 시장은 초국적 자본을 스페인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고, 2000년대 들어 서민대출을 통해 중하층 노동계급에게까지 침투하여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아래로부터의 연쇄 파산의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2010년 유럽재정위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불러온 1978년 체제의 총체적 위기로 평가된다. 익히 알려진 대로, '분노한 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2011년의 거대한 거리 시위는 신흥 정당 포데모스를 비롯해 공산주의 계열의 새로운 좌파 조직들의 결성으로 귀결되었다. 카탈루냐 내에서의 흐름은 보다 역동적이었다.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민중들의 주거권 불안이 현실화되자 먼저 지역 주거권과 도시 자치의 문제가 핵심적인 의제로 떠올랐다. 부동산-금융 시장의 횡포에 맞서 '주택담보대출에 공격당한 이들을 위한 플랫폼'(PHA)이라는 주거권 운동조직이 결성되었고, 이 조직을 이끈 아다 콜라우가 지역 좌파정당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 이하 '엔 꼬무')와 포데모스 등의 선거동맹하에 바르셀로나의 시장으로 당선된다.

2011년 '분노한 자들' 시위의 핵심적 성과 중 하나는 거리의 대규모 투쟁이 이후 소멸하는 과정에서 지역 거점형 운동조직과 신흥 좌파정당의 결성으로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도시 자치'와 '생태' 등의 화두가 2010년대 스페인 사회운동의 주요의제로 부상했다. 바르셀로나의 주거권운동에 기반해 성장한 '엔 꼬무'는 무엇보다 에너지 전환, 공공보건, 주거권, 노동권 등의 의제들을 공론화하며 '도시' 기반의 대안적 거점 공동체 운동을 진행했다. 맑스주의 공간이론가 데이비드 하비에게 영감을 받은 이들은 도시 자체를 기존의 공장을 대체하는 투쟁거점으로 간주하며 대안적 정치공동체 모델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연대경제'의 모토하에 지역의 대안 에너지 모델을 구축하고, 공공 서비스의 확대를 강력하게 이끌어 낸다.
(10월 3일 카탈루냐 총파업 참여자들의 모습으로 왼쪽은 독립을 상징하는 '에스텔라다' 기를, 
오른쪽은 독립에 '찬성'(Si)한다는 의미의 깃발을 메고 있다.)

카탈루냐 내의 친독립파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약진 역시 놀라웠다. 1980년대 이후 카탈루냐 내 일부 마을과 도시에서 소규모 거점운동을 진행하던 일부 비-의회주의 활동가들이 '인민연합후보'(Candidatures d'Unitat Popular)라는 정당을 창당하며 2000년대부터 카탈루냐 내 지자체 선거에 얼굴을 드러낸다. 이들은 카탈루냐를 독자적인 국가단위로 간주하고, 카탈루냐 민족해방이 사회주의적 이행에 필수적이라고 보는 친독립파 사회주의자들이다. 2000년대까지도 정치 지형에서 주변화되었던 이들의 성장세는 2011년 '분노한 자들' 시위와 카탈루냐 독립 여론을 등에 업고 가파르게 전개되었다. 2012년 카탈루냐 총선에서 3.4% 득표로 원내진출에 성공한 이들은 2015년 카탈루냐 조기 총선에서는 8.2%를 득표하여 원내 10석을 획득한다(총 135석). 2015년 카탈루냐 총선을 앞두고 독립 이슈를 축으로 좌우파의 거대한 이합집산이 진행되는 가운데, 독립파 연립정부에 참여한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 반민중적 에너지 산업에 대한 금지법, 난민보호법 등을 제정하며 카탈루냐 주정부의 좌익적 전회를 견인하고 있다. 

재정위기 이후 형성된 이러한 자치 운동조직과 신흥 좌파의 부상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의 거버넌스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 거버넌스 위기는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을 강제한 유럽연합의 헤게모니 위기이자 스페인 '1978년 민주화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범역적인 위기는 카탈루냐 정치 세력구도를 그 근본에서부터 완전히 재편성했다. 우선, 주도권을 쥔 리버럴 우파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민주화 이후 무려 28년간이나 카탈루냐 집권당이 되었던 슈퍼리치 기반의 정파연합정당 '수렴과 연합'(CiU)이 친독립파인 '민주수렴당'과 바독립파인 '민주연합당'으로 분열되었다. 양대정당인 카탈루냐 사회당 역시 당내 독립파가 탈당해 '좌파운동'(MES)이라는 정당을 결성한다. 민주수렴당과 좌파운동은 중도좌파 계열의 '공화주의 좌파' 등과 선거동맹을 맺으며 총선에서 승리한다. 여기에 사회주의 그룹 '인민연합후보'가 연정파트너로 합류하면서 카탈루냐 주정부의 좌측 견인력을 강화했다.

주정부의 수반인 카를레스 푸지데몬은 민주수렴당 출신의 우파 정치인으로, '인민연합후보'가 기존 주정부 수반이었던 아르투르 마스의 긴축정책을 문제삼으며 연정을 거부하자 타협안으로 주정부 수반에 추천된 인물이다. 민주수렴당이 자신들의 지지세력인 자본가 블록과 충돌하고, 인민연합후보의 요구를 수용하면서까지 독립투표를 강행한 데서 알 수 있듯, 카탈루냐 대중들의 독립에 대한 갈망은 매우 뜨겁다. 반면, '엔 꼬무'와 포데모스 등의 신흥좌파들의 움직임은 일정한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엔 꼬무는 민족의 자결권은 옹호되어야 하지만, 독립이 아니라 연방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포데모스의 당대표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10월 20일자의 현지 미디어와의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카탈루냐가 스페인 내에 남아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권력의 강제가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서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두 정당 모두 스페인 중앙정부의 월권행위를 규탄하고 있지만, 독립의 찬반을 묻는 현행의 프레임하에서 그 정치적 실효성은 매우 모호한 상태다. (포데모스의 경우) 전국정당으로서 민족적 분리를 완전히 옹호할 수 없다는 점, 나아가 유로존 탈퇴의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는 복합적 고민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좌파의 분열과 유럽연합의 헤게모니 

한편, 혼란을 틈타 먼저 유럽연합 대표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유럽의회는 개별 국가의 정당들이 다시 유럽의회 내에서 정당동맹의 형태로 새로운 정당체를 건설하는 특징을 갖는다. 예컨대,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은 유럽의회 내에서 스페인 국민당, 프랑스 공화당 등의 다른 리버럴 우파 블럭들과 함께 유럽국민당(EPP)을 구성 중이다. 유럽의회 내 최대 정파인 유럽국민당의 원내대표 만프레드 베버가 먼저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이 갈등을 더 확대할 경우, 새로운 유럽위기가 또 일어날 것을 배제할 수 없다"라며 운을 떼었다.

이어 유럽 리버럴 블럭의 핵심 지도자들인 독일의 메르켈, 프랑스의 마크롱, 영국의 메이 등이 스페인 중앙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이 지지 표명이 중앙정부의 노골적인 탄압 속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독립투표를 앞두고 중앙정부는 카탈루냐 내 선거사무소를 급습해 투표용지를 회수하고, 관계자 14명을 체포한다. 총투표일에는 물리적 충돌을 야기하며 900여 명의 부상자를 양산했고(10월 1일), 독립파 핵심 지도자 두 명을 체포한 후(10월 17일), 10월 22일에는 카탈루냐 자치주의 해산을 본격 선언한다.

같은 기간 지역 자본가 집단의 움직임도 일사천리하게 진행되었다. 총투표가 진행된 10월 1일 이후 불과 3주 만에 1,300여 개 기업의 본부가 유로존 이탈을 우려해 카탈루냐 밖으로 떠나갔다. 독립투쟁의 여파로 카탈루냐 관광산업에서 20%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언론보도가 연이어지도 했다. 독립운동 진영의 움직임은 상당히 격앙되면서도 위태롭게 전개되는 중이다. 중앙정부의 탄압과 자치정부 해산령에 맞서 연일 수십만의 거리시위가 전개되었다. 은행들의 조직적인 카탈루냐 이탈에 저항하기 위해 시위대는 집단적인 은행 인출운동을 진행했고, 참여자들은 155유로와 1714유로 등을 인출하면서 독립운동의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155'는 중앙정부가 카탈루냐 자치정부 해산령의 근거로 삼은 헌법 155조를, '1714'는 카탈루냐의 스페인 종속의 발단이 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연도를 암시한다.)

전 세계 언론이 1978년 체제하에서의 '최악의 헌정적 위기'로 묘사하는 이 사태에서 유럽연합 지도자들의 태도가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 유럽연합 집행위는 이미 카탈루냐가 독립을 선포할 시 유럽연합에 재가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자치주의 독립을 유로존 탈퇴로 해석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 공식적 입장발표는 유로존의 긴축정책에 기생하는 카탈루냐 내 자본의 연쇄 이탈을 명령하는 조직적인 수신호와 같은 것이었다. 카탈루냐 내에 이미 유로존 탈퇴에 따르는 경제위기의 공포감이 조성되었고, 이 공포감은 중앙정부의 노골적인 탄압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카탈루냐를 고립시키고 있다. 

유럽의 북중부에서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우익 포퓰리즘이, 남부에서는 스페인과 그리스 등의 신흥 좌파정치의 부상이 신자유주의 우파의 헤게모니를 위협하고 있다. 그렉시트 논란을 수반한 2015년 그리스 구제금융 사태에서부터 2016년의 브렉시트 논란에 이르기까지 유럽연합은 다시 분리주의 움직임의 거대한 원심력에 의해 총체적인 거버넌스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따라서 유럽연합 지도부들의 카탈루냐 사태 대응은 이 원심력의 모든 기대감을 그 뿌리에서부터 근절하겠다는 강력한 단죄의 성격을 갖는다고 봐야 한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노골적인 탄압은 사실상 중재의 노력을 하지 않는 유럽연합 지도부의 방관자적 비호 아래 진행되고 있다.  
(독일 총리 메크롱이 마크롱과 메이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메르켈은 좁게는 유로존의 헤게모니를, 넓게는 글로벌 자유주의의 헤게모니를 수호하는 '자유세계의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카탈루냐의 중앙정부로부터의 독립은 유럽연합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로부터 독립적인 정치공동체를 창출할 수 있는가. '유로화'라는 단일통화 체제하에서는 자국만의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펼 수 없다는 점(그러므로 경제위기의 자체 해법을 찾기 힘들다는 점), 유럽재정위기의 여파 속에 유럽연합이 강제하는 긴축정책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은 유로존 잔류의 결과를 비관하게 한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 즉 유로존 탈퇴 이후에도 과연 탈퇴국이 세계무역의 자장 안에서 유로존으로의 종속을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시리자 소속의 그리스 전 재무자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브렉시트 투표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영국인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다. "제가 당신들이 유럽연합에 남기를 원하는 이유는 탈퇴 투표가 당신들을 '떠날 수 있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을 떠나가보다 더욱 끔찍해지고 가슴 아프며 ­ 그 자신에게나, 당신에게, 그리고 사실상은 지구의 나머지 지역에게 ­ 더 위험해져 있을 유럽에 당신을 종속시킬 것입니다."

카탈루냐는 유로존 헤게모니 위기의 두번째 시험대다 

신자유주의의 도입 초창기의 우파 헤게모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발언이 마거릿 대처의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였다. 머릿글자만을 따서 티나(TINA)라고도 불리는 이 발언은 사회주의의 몰락 국면과 함께 자본주의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신자유주의의 지배하에 그 어떠한 유토피아적 열망도 뿌리내릴 자리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대처의 이 발언은 소위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급부상한 독일 메르켈 총리에 의해 의미심장하게 반복되었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압도적 지배 속에서 다른 어떠한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2015년 그렉시트 논란으로부터 강화되었고, 브렉시트를 통해 본격화한 유럽연합 내의 모든 분리주의 움직임들은 이 대안 없음의 압박 앞에 총체적으로 무릎을 꿇고 있다. 그리스의 시리자는 유로존 탈퇴를 감수한 국민 총투표 결과에도 궁극적으로 긴축정책을 받아들이며, 반(反)긴축정당으로서의 자기 입지 자체를 강하게 훼손당했다. 2015년 구제금융 합의 후 그리스의 상황이 여전히 회복세를 타지 못했다는 점, 시리자의 정치적 입지 자체가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카탈루냐는 이제 그 두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이 두 번째 시험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유럽 좌파의 명운이 걸려 있다. 

재정위기의 국면에서 유럽은 난민과 이민의 이슈가 다른 대안적 담론을 압도하고 있다. 과거 사회운동의 핵심 거점이었던 공업단지와 그 조직화의 모델을 형성한 민주노조는 체제내화되면서 운동의 중심축으로서의 역량을 훼손당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유럽 중도좌파 운동의 양날개 모델인 사회민주주의와 민주노조 운동의 동반 쇠퇴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카탈루냐 좌파들의 거점형 자치주의 운동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탈루냐 좌파들은 카탈루냐 민족주의 문화에서 마을운동의 형태로 보존되어 온 이른바 '이웃협회운동'(moivement veïnal)의 네트워킹을 새로운 조직화 모델의 준거로 삼았다. 10월 1일 총투표를 앞두고 결성된 '총투표사수위원회'는 이웃협회 등의 과거 네트워킹 모델에 기반해 대중들을 조직하며 투표소를 밤새 사수했다. 카탈루냐의 '이웃' 네트워킹은 프랑코 독재하에서 카탈루냐어를 보존하고 국가를 대신해 공공 서비스를 자체 조직화한 풀뿌리 조직문화였다. 이 낡은 문화적 유대감은 자치형 사회주의 운동의 새로운 정치 이슈들 ­ 대안 에너지, 주거권과 노동권, 이주민 인권, 이른바 '사회적 연대경제' 등 ­ 을 만나며 오늘날 카탈루냐 사회운동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  

카탈루냐 내 활동가들에서부터 스페인 중앙정부가 현행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일치하는 거의 유일한 지점은 거리의 투쟁이 결코 주정부 여당의 통제하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스페인 군대 내에서 폭로된 한 문서는 다음과 같은 내부용 평가를 담고 있다. "우리는 카탈루냐 정부가 이 조직들을 그 순간 제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 거리는 급진파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주류 자본가 블럭들은 대부분 독립에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하며 주정부의 독립운동을 규탄하고 있고,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을 추진했던 양대정당들은 독립에 반대하며 모두 10% 안팎의 낮은 지지율을 보일 뿐이다. 역으로 신흥 좌파들의 영향력이 유의미한 확장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들이다. 

앞서 말했듯, 포데모스와 엔 꼬무는 독립보다는 현행의 헌법체제를 수정해 연방제를 구축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독립이 되었든 연방제가 되었든 핵심은 현행의 투쟁을, '유럽연합'이라는 이름을 통해 지탱되고 신자유주의 금융화라는 맥락에서 발효되는 '1978년 체제의 청산'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글을 쓰는 10월 23일 현재, 주정부는 중앙정부의 자치주 해산 결정에 반발하며 위태로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 거점운동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그 사회운동의 조직화 모델부터 운동이 수반하는 포괄적인 의제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유럽 및 한국사회의 좌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